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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슬레타 머큐리는 무언가 신기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왠지 곧 무슨 새로운 일이,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생길 것만 같은 이질적인 느낌. 그리고 그런 육감과는 상관 없이, 실제로도 그녀의 방문 밖 복도에서는 무언가 쾅쾅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소 빠른 템포로, 캉, 캉, 하고 구두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
영애의 지위는 소용 없다. 뭔가에 골몰하는 듯, 언제나처럼 불손한 표정을 하고 따각, 따각, 구두를 플로어에 맞부딪히는 그녀의 허리께 뒤로, 길면서도 짧게 드리운 고유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미오리네는 지금, 단 한 사람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슬레타 머큐리. 너는 누구인가? 존재의 본질은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으며, 쓸데없이 철학적 공상에 빠져 들어서는...
휘슬 소리가 들린다. 4분 23초! 슬레타 머큐리, 정신 안 차리나! 이름을 호명하면 터치 패드에 손도 떼지 못한 채로 숨을 몰아쉬던 여자애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황급히 대답하면 코치가 혀를 찬다. 지금 대회가 얼마나 남았다고 정신이 별나라로 가있어? 대답은 기대하지 않는 듯한 물음이다. 슬레타 머큐리가 그에게 제대로 대답하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정신...
나는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아직도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어쩌면 아직 언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제일 가까워 보이는 것을 끌어다 쓴다면 조현병과 해리 장애로 좁혀지는데, 나는 그것이 조현병이었다는 게 아직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한창 오컬트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오컬트의 논리가 세상의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믿도록 일조한 사...
늘 혼자서 마시는데 직원 언니가 자꾸 말을 걸어준다. 머리는 짧고, 키는 모르겠다. 신기할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관심과 이해하기 위한 설명들. 근래에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그렇다. 그리고 나는 말하는 것이 두렵다. 나의 사적인 것들을. 어쩌면 영원히 이해받지 못 할까봐. 왜 여자 만나는 건 늘 술을 마셔야 하는 걸까 몰라. ...
제목의 대사는 자기가 그렇게 만만하냐는 해준의 질문에 답하는 서래의 대사이다. 이어지는 글의 흐름은 작품의 흐름과 같다. 영화를 틀어놓고 쓴 글이라 영화를 보며 읽으면 좀 더 매끄러울 것이다. 해준의 아내는 숨 막히는 사람이다. 산을 좋아하는 이가 인자하지 않으니 바다를 좋아하는 이는 필연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서래와 해준은 바다를 좋아한다. 뛰어난 맛의...
서면 이쪽 술집 혼자서 갔다가 즉석에서 합석한 얘기. 상사 욕. 얼마 전 기억해낸 부친의 폭력. 그리고 이런저런 신변잡기… 특정이 될 정도로 구체적인 신상 부분은 돈을 걸었습니다. 작정하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가려놨음. 겁대가리가 없어서 늘 문제입니다. 그다지 구매를 바라고 걸어놓은 건 아니에요. 가끔씩 이유 모르게 가슴이 술렁거린다. 압...
보통 러닝 기간 중에 하고 싶었던 말을 미리 정리해서 기억해두는 편인데 3개월이 되니까 도저히 안 되네요. 델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델마는 타고난 성정은 차가우나 따뜻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을 상정하고 만들었습니다. 시민은 어떻게 양성되는 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잘 된 거 같지는 않습니다. 캐어필 하는 방법을 바꾸든가 해야지… 중간에 많이 아파서 좀 ...
아주아주 아파서 쓰는 글은 아주아주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겪는 괴로움과 정신병은 정확하게 비례한다. 몸이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면 몸이 아프다. 아프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누군가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긴장해서 근육이 굳는다. 항생제와 진통제와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하나도 안 낫는 것 같을 때마다 하나씩 더 집어먹는다. 어쨌든 견뎌야 한...
입사 지원서를 스무 군데 정도 넣어놨다. 몇 줄 안 되는 알바 경험과 한 손에 꼽히는 자격증. 머리를 굴려 쓴 자소서를 들고 사측의 요구사항을 본체만체하며 일단 넣고 본다. 괜찮아요. 저 뭐든 할 수 있어요. 급여만 주세요. 대학 나온 바보들 보다 나아요. 그리고 연락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 앞으로 찾아가고 싶은데. 나는 간절하고...
참고로 오늘 퇴원했다. 돌아오자마자 은행 들르고 이력서 넣고 집안일 확인하고 밀린 연락하고 장 본다고 정신없었다. 중간에 한 시간쯤 뻗어서 잤다. 또 엄청나게 악몽을 꿨다. 입원한다고 드라마틱 하게 나아지진 않는구나. 그래도 일어나서 저녁을 하고 할머니와 밥을 먹고 후식으로 녹차까지 우렸다. 지인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건데 향이 정말로 좋다. 이대로 그냥...
내가 ■■해 마지않는 미친 여자아이.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새로 산 옷들도 못 입을 것 같으면 전부 내다 버립시다. 이제 그대 또한 선택했으니 우리를 현세에 붙드는 닻의 줄만 끊어내면 될 일입니다. 나의 주저함은 언제나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파괴적인 삶 속에서 애정은 고통이 되고 생을 갉아먹게 될 것입니다. 이젠 나도 느리게 ...
폐쇄병동이라길래 핸드폰부터 압수당할 줄 알았는데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곡을 들으며 병실에서 일지를 쓴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지. 영화 같은 불편함은 없다. (내가 단체 생활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고.)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리라. 노트북을 들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충전 선은 짧은 것만 허락된다. 이걸로도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들...
의사가 지어주는 이름에는 기이한 힘이 있다. 지현 씨를 하나의 병으로 분류하기는 힘들어요. 해리성 장애, 트라우마성 장애, 우울 장애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하나로 일단락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나는 낮은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보고 좀 웃었다. 그렇게까지 티가 나는구나. 언젠가 농담으로 자낮을 가정교육으로 조기교육 받았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괴로우면 글을 쓴다. 비교적 근래에 생긴 습관이다. 선생님이 약을 감량해도 좋을 것 같다고 3주 전부터 말씀하셨다. 정말로요? 약을 줄여도 괜찮을까요? 내가 나아졌나요? 설마 이게 나아졌다고 하는 건가요? 나는 아직도 엉망진창인데? 알프라졸람이 0.4mg에서 0.25mg으로 줄었다. 알프라졸람은 벤조디아제핀계열에 속하는 약물로 뇌에서 신경흥분을 억제하여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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