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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으로 나뒹군다. 턱 막혔던 숨은 곧 트여서 기침으로 변했다. 일어나세요, 하고 들리는 말은 환청인지 진짜 들린 말인지,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또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세요, 하고. “고작 이 정도에 쓰러지시면 어떻게 합니까.” 길게 숨을 내쉰다. 그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하다는 소리를 할 것 같아서 입을 꾹 ...
* 소장본에는 없는 외전 * 시간선은 동생들이 나갔다가 민규가 돌아오기 전까지 후회라는 건 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되새김질하는 것, 그 끝에 오는 ‘그래서는 안 됐다’는 감정. 이미 해버린, 끝이 나버린 것을 새삼 떠올리며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품에 껴안고 있다보면 남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
“나 귀신이 보이는 거 같아.” “이제 와서?” “이제 와서라니.” “니네 집에서 귀신 봤대매, 그라고 니 학교에서도 귀신 봤다이가. 근데 뭐 이제 와서 귀신이 보이네 마네 하는데. 새삼스러운 거 아이가.” 그라고 귀신은 내도 본다, 하고 사탕을 입 안에서 데굴, 굴린다. 포도 맛이라는데 이게 포도 맛인가, 싶을 정도의 인공적인 맛. 포도 맛이 아니라 포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확신이 없었을 뿐. 확신, 그놈의 확신. 강형호를 현실에 묶어두는 그 어떤 것. 현실에 발을 디뎌 살아가게 만드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나 망상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를 가진 무엇인가. 하지만 근거가 없으면 어떤 것이든 주장이 되고, 실재하는 것은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근거를 갖는 것이 무서웠을 수도 있다. 배두훈이 거기서 나오지 못하...
선배에게는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겠지만,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강형호를 폭행한 것에 관한 일이다. 선배의 모든 주장,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마치 길에 굴러다니는 먼지만큼의 무게감도 없이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릴 망상으로 치부되었고, 그 탓에 죄 없는 그의 부모는 형호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했다. 저의 부모보다, 혹은 부모만큼 나이 먹은 사람...
이상한 꿈을 꿨다.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은 고우림에게 있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불쾌한 악몽, 혹은 그저 무섭기만 한 악몽을 꾸는 건 어릴 적에는 다소 흔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혹은 우연히 봤던 무서운 프로그램 속 분장한 귀신을 보고서 그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아 뇌리를 떠돌다 꿈속에 자리 잡아 나왔을 때, 혹은 남들에겐 별거...
그저 우연일지도 모른다. 고3, 수험생, 지난 12년간 지내온 시간을 고작 몇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의 압박 때문에, 더 이상 공부하기 싫어서, 혹은 공부하기 힘들어서 가출했을 수도 있지. 실제로 그런 얘기는 심심찮게 듣기도 했다. 그저 소문처럼 들려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옆 학교엔 부모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
마치 천장까지 닿을 것 같은 책장을 노려본다. 눈앞에는 무수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벌집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벌집을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백과사전에 실려 있던 흑백 사진 속 벌집과 눈앞에 꽂힌 무수한 책들의 질서정연함은 벌집을 연상시킬 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세월을 여기에서 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등에 적힌 제목이 색이 바래 희끄무레하...
* 본편 끝나고 나서 만양 촌놈(?)들의 서울 관광기 “와, 우림아, 우림아, 저거 뭐야? 저게 그 63빌딩이야?” “어….” “아냐, 잠깐만 있어봐. 형이 맞춰볼게. 롯데타워! 맞지!” “아냐.” “그럼 63빌딩이야?” “아냐, 저거 남산타워야.” “아, 남산타워야…?” “왜 시무룩해하는데.” “이번에야말로 맞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왜 갑...
* 수요 없는 공급의 1인자 * 막둥이 대학 가기 전, 시점상 반항기 와서 금쪽이 됐다가 물리구마 받고 반성한 직후 너 진로 어떻게 할 거야? 라는 말을 들으면 우림은 항상 말문이 막히곤 했다. 질문을 던진 이는 늘 달랐다. 같은 반 친구일 때도 있고, 다른 반으로 갈라져 친하진 않지만 복도에서 마주쳐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인 애일 때도 있고, 동네에...
마치 낯선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눈에 익지만 익지 않은, 알지만 모르는 것 같은 길을 걸으며 강형호는 마치 제 발목을 누군가가 줄곧 잡아채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있는 느낌,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 고향에 돌아간 기분이기도 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모래사장....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착각까지 주던 터널의 끝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찾아왔다. 희미하게 밝은 빛이 시야의 끝에 비춰 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길고 긴 터널의 끝,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은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출구의 바깥은 여전히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희미하게 보이는 숲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니, 현재 상황은...
사방의 정적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전철역, 마치 간이역처럼 보이는 작은 크기는 얼핏 좁아 보였으나 함부로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공포 역시 동시에 존재했다. 어두운 공간은 온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강형호는 제 품에 있는 가방을 꽉 끌어안...
* 열도의 괴담 키사라기 역(실존하지 않는 무인역에 내려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을 서술한 괴담)을 기반으로 어찌어찌 만들어 본 얘기. 괴담을 기반으로 써봤지만 호러는 아님ㅇㅅㅇ 몸이 아플 때마다 생각한다. 죄가 많은 것이라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를 끌어안고 살면서도 참회조차 하지 않은 뻔뻔함에 천벌이라도 받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야 고백한다. 나...
* 느와르 같지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도 잘 모르겠다 데헷 그러니까… 이게, 언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음…가볍게 5년 전으로 가볼까? 아, 더 가야 하나? 더 가야 하겠네, 한참 뒤로. 여기 이 집 있잖아, 이 집. 이 집 장남…나는 형이라고 부르는데, 형한텐 특이한 능력이 있거든. 초능력의 일종이기는 한데, 미래가 보인대. 예언? 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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