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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서의 서울의대 합격 기념으로 열린 축하파티에서, 김주영은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불청객 마냥 파티 한구석에 앉아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은 딱 질색 이었고,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그런데 또 예의없이 자리를 피하는 것은 또 무례하게 보일테니, 떠날 수도 없었다. 이래서 상류층은 골치 아프다. 한창 파티가 무르익어갈 쯤, 오늘의 주인공인...
형식적인 예의로 서로의 증오를 가려왔던 3년의 끝이 다가왔을 때, 김주영은 끝내 한서진의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다. '예서야, 이 모든 것은 네 부모의 탓이란다.' 자극한 끝에 결국 강예서는 황우주에 대한 죄책감과 김혜나에 대한 죄악감을 버티지 못했다. 본래 마음이 여렸던 아이는 남은 시간을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아가다, 서울의대 합격증을 받은 날 끝내 집을 ...
14살의 김주영이 2차 성장을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 목덜미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주영이 숨을 들이키며 황급히 거울을 들여다 보자, 날카롭게 길을 새기며 흐르는 피와 함께, 제 쇄골 위에 천천히 정갈한 세글짜가 세겨져가고 있었다. 짧지 않았던 고통이 어느새 멎고 난 후, 흐르는 피를 물로 씻어내 보았다. 남아있는 흉터의...
곧 만우절 이구나. 한서진은 달력을 펄럭이며 문득 든 생각에 미소 지었다. 정식으로 김주영과 교제하기 시작한지는 이제 한달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밤에 관계를 가질 때 말고는 그렇게 가까워질 기회가 없는 것만 같았다. 주영이 워낙 바쁘고 무뚝뚝한 사람이다 보니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것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이 날 만을 기다렸디. 한서진은 김주영에게 만우절...
무기력했다. 더이상 그 무엇에도 아무런 의미도, 미련도 없는 것 같았다. 가장 소중했던 사람은, 엄마는, 죽어버렸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증오했다. 되고 싶은 건 딱히 없었고, 서울의대를 가고자 했던 것도 그저 강예서의 화를 돋구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와서 그런게 상관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저번에 김주영을 찾아갔던 것도 괜한 일이었나 보...
멍하니 서있는 김혜나를 꽉 끌어 안으며 자신을 '아빠' 라고 칭한 강준상은 그녀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강력하게 반대하는 강예서와 한서진을 무시하고는 애틋함 가득한 눈빛으로 혜나를 바라보며, 강준상은 끝내 그녀를 자신의 호적 위에 올렸다. 그렇게 김혜나는, 강혜나가 되었다. '강혜나'. 익숙하지 못한 이름이 혀끝에 껄끄럽게 다가왔다. 강준상의 집...
한서진은 강예서의 어미였다. 김혜나가 그토록 미워하는 강예서를 끔찍히도 사랑하는 어미. 김혜나가 보기에는 그 보다 더 가증스러워 보일 수도 없는 행동들도 어여쁘다 하며 환히 웃어주곤 하던 아름다운 우아한 귀부인. 처음에는 질투 였던가. 그 싸가지 없는 강예서도 한서진 처럼 사랑을 퍼부어주는 어미가 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부러웠었다. 자신의 어미는 죽음의 문...
"여태까지 절 이렇게 속여오셨군요." 거칠게 붙잡힌 손목이 아파왔다. 저를 응시하는 두눈이 평소와는 다른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 "..... 지금까지 당신의 말을 그토록 믿어오던 제가, 얼마나 우스웠을까요?" 실소 같이 터져나오는 목소리에 서진을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 일이 이렇게 까지 꼬일 수 있었는가 생각했다. 아, 어쩌면 애초에 이 일을 맡기로 한 ...
하나하키 AU (각색 주의) 한 순간에 찾아온 짝사랑은 그저 짧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을 맺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김주영은 쓰린 목을 붙잡고 또다시 기침했다. 자주색 꽃잎들이 목구멍에서 흩날려 나왔다. 주영은 세면대를 붙잡고, 괴로운 기침을 하며 이제는 피가 섞여 나오는 꽃잎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네모네. '사랑의 괴로움' 이라는 꽃말...
김혜나와 강예서는, 서로를 사랑했다. 악연으로 시작한 인연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애정이 되었고, 그것을 알아차렸을 쯤에는 이미 서로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그들 사이의 감정은 감히 어린 소녀들의 풋사랑 이라고 부르지 못할 만큼 간절했고, 헌신적이었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 절망은 수배가 되었다....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오는 날 이었다. 김주영은 하필 그날 평소 답지 않게 우산을 가져가는 것을 까먹고 말았고, 조선생은 케이를 위한 크레파스를 사러 가느라 부재중 이었다. 주영이 비가 온다는 것을 눈치 챘을 쯤에는 이미 도시에 어둠이 깔린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기에, 우산을 팔 만할 근처 가게는 다 문을 닫았을 것이었다. 주영은 서류 작성을 하는데 정...
원나잇 이었다. 그저 외로웠던 여자와 외로웠던 여자가 만나, 홧김에 저질렀던 행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그저 한번 있었던 해프닝일 뿐 이었다. 특별할 것 따위는 없었고, 그저 다시 스쳐갈일 없을 가벼운 인연 이었다. 서로의 이름을 알아낼 필요도 없었고, 차라리 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김혜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음에 또 오렴." 모든 ...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강예서는 유리 너머의 김주영을 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면회실은 춥고 삭막했으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따스한 공간과는 너무나도 대변되었다. 김주영을 만나겠다고 뜻을 밝힌 딸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결국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던 어미의 애절한 목소리를 회상하며, 강예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엄마는, 아직도 노심초사 하며 면회실...
카페에서 죽 치고 앉아있던 세 모녀가 슬슬 숙소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할 쯤, 서진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한서진은 화면에 뜨는 이름에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화색이 되어 전화를 받았고, 두 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각자의 음료에 입을 댔다.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네 선생님~." 한서진은 밝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통화선 반대편의 상...
한서진은 결국 이른 저녁이 다되어서야 김주영의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서질 것만 같이 아파오는 허리를 붙잡고 앓는 소리를 내는 서진을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본 주영은 서진에게 집으로 바래다 줄 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그저 손사레를 치며 차를 몰고왔으니 괜찮다고 답했다. 힘들게 다시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온 한서진은 곧바로 언짢은 표정의 강준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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