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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태민이랑은 못해도 오천 번 싸웠다. 장난 반 진담 반 해서 사천칠백오십 번, 이태민이 삐쳐서 백번, 김기범이 화나서 백사십구 번, 헤어지자는 말만 안 했지 언성 높이고 개싸움 한 번 한 게 한 달 전이었다. 헤어지고 자시고 그런 것도 몸만 묶여있을 때나 쉽지, 파생된 게 많으면 할 수도 없다. 칠 년 연애하고, 삼 년 동거하고, 거기에 쏟아부은 돈만...
몸이 에이는 정도의 진정한 사랑은 이별을 해야만 느낄 수 있다, 고 김기범이 말했다. 이제 막 사귄 지 꼴랑 1년 된 최민호와 10번째 이별을 맞은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최민호 걔가 여태 어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해왔는지는 김기범 알빠도 아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만, 김기범은 연애에 있어 이 정도로 변덕이 심한 독불장군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파탄이...
1. 열다섯, 봄 최민호랑은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다. 남들 말에 따르면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절정을 맞아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랬다. 2학년 2반의 회장은 최민호였고, 부회장은 김기범이었다. 최민호야 원체 성격이 활발하고 모범적이라 그런 거였고, 김기범은 친구 추천에 우연히 후보로 올랐다가 단지 친구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부회장이 되었다. 예민하디 예민한 ...
김기범은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상황 파악 중이었다. 이 새끼 체대 입시생 아니었나? 근데 왜 멘토멘티를 신청했지? 그냥 점심시간마다 깝치길 좋아하는 놈인가 보네. 나한테만 투자해도 아까워 뒤지겠는 시간 생기부에 뭐라도 한 줄 더 적어보고 면접 때 입 좀 털어보겠답시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멘토멘티를 신청했다. 좀 멍청해도 대강 말 잘 듣고 기 세지만 않았음...
김기범은 이따금씩 걔가 해주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 이태민 집에 찾아갔다. 이태민이 끓인 라면을 처음 먹은 건 술 진창 퍼마시고 난 다음 날이었다. 여기저기 던져진 옷가지들로 방안이 어지럽고 허리가 저려왔다. 자조적인 웃음이나 흘리는데 이태민이 벌컥 문을 열더니 눈도 못 마주치고는 그런다. 해장하려고 라면 끓였는데… 드실래요? 사실 그건 김기범의 의사와는 상...
좆소는 이래서 안 된다. 가 족같은 회사를 표방하는 빛돌기획은 글러 먹어도 한참을 글러 먹었다. 있을 건 다 있다. 사장이며 이사며 인턴이며, 하물며 외국물 먹고 온 비지니스맨도 있다. 문제는 위계질서가 탄탄한 그 좆소회사에서 사장부터 인턴까지 하는 일은 똑같다는 거다. 회계팀, 영업부, 총무부, 인사부 그딴 것도 없다. 애초에 사람이 일반 회사에 있을 만...
김기범은 이태민이랑 장장 3년은 붙어먹고 헤어졌다. 말이 좋아 3년이지, 애인 도장 찍은 건 겨우 1년이 지나지 않았다. 2년을 서로 간만 보다가, 눈짓만 주고받다 만났는데 정작 결과는 과정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었다. 애인이라는 호칭을 허락한 것도 김기범이었고, 이제 그만 보자고 퇴짜 놓는 것도 김기범이었다. 그 이유는 둘 다 이태민이 참으로 부담스러워서....
운명, 그런 게 정말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은 수영장에서 처음 김기범을 봤을 때나 했다. 그딴 거 다 연애 같은 거 해본 적도 없는 새끼들이 책이나 진부한 로맨스영화보고 지어내는 환상이라고 했는데, 빨개벗고 가릴 것만 가린 상태에서 김기범 보고 신념 다 고쳐먹었다. 그렇다고 첫 눈에 반한 건 아니고 그냥 좀 유달리 달라보이는 인간이었다. 우락부락한 수영부 ...
태민아 우리는 죽으러 가는 거야. 끔찍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이 프로젝트가 성공일지 아니면 실패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평생을 우주에 둥둥 떠다닐 수도 있는 노릇이고. 평생을 지구에서 살다 한 순간에 우주쓰레기가 될지 아니면 다시 땅을 밟고 흙을 느낄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 이 비행은 아사, 하다못해 나이가 다 차서 눈 감는...
절 두고 도망치지 않을 사람 구해요. 그래, 그렇게 됐다. 김기범이 겨우 그따위의 문구를 내걸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김기범이 여태 만나온 남자들은 죄다 김기범을 홀랑 빼놓고 다 도망가 버려서. 기범아, 넌 너무 부담스러워. 기범아, 난 아직 여자가 더 좋은 것 같아. 기범아, 기범아, 나는. 이유도 갖가지였다. 김기범은 어느 순간 제 연인한...
그 형은 꼭 고양이를 좋아할 것처럼 생겼어. 근데 사실은 강아지를 좋아해. 그리고 또 그 형은 양식만 먹을 거 같으면서 한식 엄청 좋아해. 이태민이 김기범을 생각할 때면 지독히도 반복하는 말이었다. 태민에게 있어 기범은 그 형이었다. 이태민의 주변에 있는 놈들은 그 형이라고 하면 다 아 또 김기범 얘기하는 구나, 싶었다. 기범과 일면식이 없는 놈들조차도 김...
이태민이 입학한 날 미대는 뒤집어엎어졌다. 진짜 미대생같이 생긴 놈 하나가 들어왔다고. 흔히들 있는 편견 중 하나가 체대생은 허구한 날 검은 옷,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고 미대생은 온 몸으로 나 미대 다녀요라고 뽐내고 다닌다는 것인데. 이태민은 그 미대생놈들 옷보다 화려했다. 입은 옷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는데 얼굴이 존나 화려해서 한바탕 소란이었다. 김기범은...
귀분아 이거 새로 샀어? 너랑 잘 어울린다. 사람 좋은 미소로 이태연이 그랬다. 선도부고 학주고 피해 반에 들어와 겨우겨우 낀 피어싱. 맨들맨들한 귀를 한 이태연은 뭣도 모르고 김귀분의 귀를 만지작댔다. 새로 뚫은 지 얼마 안 돼서 아프단 걸 이태연이 알 리가 없었다. 쟤 귀엔 구멍 같은 건 없었으니까. 김귀분이 인상을 찌푸리며 수그러들면 이태연은 보기 좋...
또 헤테로냐? 엉. 그렇게 됐다. 그러면 최민호는 저 대신 가슴만 퍽퍽 쳐댔다. 너는 무슨 마빡에 헤테로라고 적혀있는 것 같은 새끼들만 좋아하냐. 나는 나 나름대로 억울해져서 소리만 빽 질렀다. 시팔. 내가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하냐? 좋아하고 보니 그 자식이 씹테로인 거잖아. 염병, 존나 억울해. 시팔 나는 레즈였어도 일스만 존나 찾다가 연애 한 번 못하고...
형, 기범이형 왜 나중에 우리 둘 다 결혼 못하면 그냥 같이 살래요? 김기범은 핸드폰이나 냅다 떨궜다. 그 자그마한 액정 속에서 김기범의 캐릭터는 처절하게 죽어가고 있었는데 저 어린놈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어보았다. 너 결혼 생각은 있어? 저 비혼주읜데요? 게임이 끝났다는 소리를 배경으로 그냥 이마만 퍽퍽 쳤다. 김기범은 이태민이 부담스러웠다. 아는 동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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