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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이 남으려나.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다시 초커로 꽁꽁 싸매어질 목덜미인데 어때서. 그리고 그리 귀할 것 없는 몸뚱어리에 흉 하나쯤은 슬슬 생겨날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그 자리를 매만지다가 따끔한 감각에도 손을 떼어내진 않는다. 흘러내리다 굳어내린 핏물의 비릿함에 고개를 느슨하게 기울이고 이내 웃는다. 자리 위에 덧대어 지는...
*편이님 글 일부를 인용 하였습니다 :) 사람이 죽으면 그 혼백은 어이하나? 그 사람이 가장 그리워하는 이의 얼굴을 한 이가 데리러 온다지. 그렇다면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 이는 어이하는가? 어이하기는. 그 이가 가장 은애할 법한 얼굴로 홀려 데려가지. / 삭일을 하루 앞둔 그믐의 밤은 삿된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설치기에, 산 것이 움직이기에는 영 마땅치않...
"여행은 잠깐만 다녀올게, 혹시나 네 마음이… 그동안 정리될 수 있잖아." "네? 아니……. 안 가는 게 아니었어요?"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로 제 머리 위에 붉은 꽃이 피어났던 날을 기억한다. 기어이 달려가 그를 붙잡고 떠나지 말아달라 애원했던 말, 오갔던 짧은 숨들과 지나치게 꼭꼭 숨겨두어 자각하지 못한 연심으로 밤도 새벽도 걷어냈던 그 날을. "다녀올...
BGM : https://www.youtube.com/watch?v=So6ddrTcADU 내다 본 창 밖으로는 어스름한 달이 몸을 기울고 있다. 길었던 밤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봄이 움트는 세계는 그에게는 몹시 생경한 것이나, 그는 그것을 크게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는 당연한 것이었고, 지금부터는 익숙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니. 그리하여 그는 그...
언제나 일말의 소란스러움과 엄중한 침묵이 불협화음처럼 공존하는 오러국은 밤 중에도 불이 환하다. 눈 밑을 시커멓게 칠하고 비틀거리는 신입들을 보고 혀를 가볍게 찬 그는 제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달칵, 얄팍한 문을 사이에 두고 연한 제비꽃 향기가 맴도는 공간이 차분히 심장을 가라앉힌다. 부엉이가 물어 온 편지는 조금 뜻밖의 소식이었다. 아니, 그리 놀라울 ...
모든 것이 끝나고 맞이하는 저녁은 이전처럼 두렵지 않다. 아늑하게 꾸민 다락방에서 올려다보는 별자리는 곱고, 아래 층에서 우당탕 뛰어 노는 고양이와 벽난로 앞에서 담요를 휘감고 꾸벅꾸벅 조는 친구, 그리고 그의 작고 충실한 가족인 레이니는 모처럼의 솜씨를 발휘해보겠다며 국자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인기척이 그가 간절히 바랬던 일상들을 되돌려 받은 것...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스스로의 신념과, 욕심과, 수많은 갈래 속에서 결국은 제 손으로 산택한 것들을 손에 넣기 위하여. 그것에는 대단히 숭고한 뜻이 있을 수도 있고, 그처럼 평범하게 타인의 내일을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그것은 모두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기에 그 마지막 역시 스스로 결정지을 권리가 있다지만, 당신...
오래도록 소망해온 것이 있다. 종종 그의 인생을 전부 짐어삼킬 것처럼 날름대는 장미넝쿨 사이에서 도망치는 것. 혹은 그를 무겁게 짓누르는 무게의 세상을 떨쳐내고 두려운 여행을 떠나는 것. 그러나 기실 어느 쪽도 그는 선택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두고 외면하기엔 그의 속에 남은 불길은 늘 타오르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 혼을 불태워 길을 만...
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별이 쏟아질 듯 아름다운 밤을 겁내하지 않고, 누군가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그러한 날을. 밝아오는 아침 해를 감흥없이 바라보며, 오늘도 일과가 시작된다며 약간의 짜증과 하루를 시작하는 낯섦을 느끼는 순간을. 아침에 부엉이가 물어오는 신문을 보며 소소한 간 밤의 사고에 눈을 찌푸리고, 어제와 같은 이들...
Dear. 다리아 O. 아리스티드 그간 평안 하셨는지요. 일신의 일이 바빠 어머니께 제대로 된 인사 한 번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소식이야 말로 네 일신의 안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웃으며 괜찮다 이야기하실 어머니를 알아 다시 펜을 듭니다. 이번 호그와트 후원파티에, 가문을 대신하여 참석하시는 것이 어머니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가장 찬란한 순간의 우리는, 약칭 <찬란> 조셉 조 터너 x 레브 아서클레이스 플로렌스 관통후기
그러니까 하늘에 맹세컨대, 위무선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도, 이릉노조로써의 삶을 이어갈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비극으로 끝나 소중한 것이라곤 죄다 박탈당한 생이 무어라고 예뻐 다시 살고 싶었을까. 그러니,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위무선은 스스로에게 향하는 악의들을 모른체 하지는 않았다. 그가 살해하고 말았던 사저의 아이와, 그에...
이름은 모현우, 난릉 금씨 금광선의 사생아이며, 아마도 단수이고 동시에 미쳐버린 사람. 그것이 지금까지 원래의 몸주인인 이에 대해 알아낸 것의 전부였다. 물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다른 사람들이 질겁할 요소들이 잔뜩이었으나 위무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그를 의심하겠는가. 그래도 위무선, 이릉노조라 불리던 그는 풍신준랑이라 불리던 풍...
숨을 들이킬 수 없을 만큼 공기가 떫었다. 아니, 따지자면 공기는 죄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마 그 자신일테니까. 위무선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이 엉망으로 널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추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좀먹혀가는 몸뚱아리는 이제 통증조차 희미하여 의미가 없었다. 자초한 것이지만 조금, 아주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저."...
강징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때아닌 소란에 휘말린 남망기는 그의 고요 속을 휘젓는 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그의 천리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는 제 천리를 태연하게도 누설하는 위무선을 보고 기겁해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망기야, 얼굴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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