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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고서 몇 주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자신답게 보내고서 키사라기 치하야는 자켓 주머니에 손을 비집어 넣은 채 하얀 숨결을 내쉬었다. 그 옆에서 하늘이 맑다는 목소리에 짧게 끄덕이면서 그 모습을 따라하듯이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본다. 응, 역시 맑구나. 작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하니 옆에서 함께 걷던 아마미 하루카는 부끄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뭔가...
‘만약에’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이 또 얼마나 있을까. 또 그것에 미련을 가지고야 마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을까. 그렇다면 ‘만약에’를 곱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신은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 걸까. 더운 공기 탓에 갑갑해져 그대로 숨을 털어 놓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전체적으로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일을 하고서 돌아가는 길이니 피곤이 쌓...
영원을 사는 존재라고 해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는 없다. 또한 반대로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고서 질질 끌고 가버리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어둠에게 사랑 받으며, 지배하는 여성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안겨드는 어둠에 잠기면서 감았던 눈을 떴다. 몸이 조금, 무거운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기 위해서 가볍게 주먹을 ...
무언가를 잃는다는 건 말이야. 나른한 몸을 깨우기 위해 뭐라도 마실까 싶어 고민을 하던 마리아는 냉장고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추고 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대로 시선을 목소리의 주인, 물론 그 자리에는 마리아와 카나데 밖에 없으니, 카나데에게 향하니 카나데는 반가운 것처럼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에 마리아는 손을 내리고서 발길을 옮겨 탁자 위에...
아무리 키사라기 치하야, 물론 자신이지만, 여하튼 내가 담백하다고 자주 듣는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험한 말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은 소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이겠지. 그리고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두 손이 얼굴을 덮었다. "괜찮아, 나도 그러고 싶어." 그리고 그런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안쓰럽...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섞여 염분 냄새가 폐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것처럼 다시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강하게 쉬었는지 가슴에 답답한 느낌이 맴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을 바보 취급할 수 있어, 크리스는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던 오른손을 꺼내 자신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목에 감돌던 차가운 기운이 오른손에 기어가, 그...
자신과 정말로 똑같이 생겼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는 그 사람을 보고서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책상에 가지런히 눕혀진 채 펜을 기다리는 자신의 공책 위에 두 팔을 겹쳐 쓰러지듯이 엎어지면서 나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원래는 시를 쓰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첫 인상이 될 것이고, 현재...
“어라? 하루카 언니? ...앗...”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에 다리와 팔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꾹꾹 참으며 복도를 걷던 소녀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서는 숙였던 고개를 올렸다. 그 얼굴이 자신에게 있어 선배에 해당하는 사람이며, 그 이름이 아마미 하루카라는 것을 기억한 소녀는 그대로 힘차게 팔을 올려 붕붕 흔들었다가 무언가가 무는 듯한 아픔에 그대로 소...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분명 미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나는 더없이 하얗고 가느다란 목을 잡고서, 조금씩 힘을 넣고 있겠는가. 그것도 자신의 목이 아닌 타인의 목. 타인도 아닌 동료의 목.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확실한 온기와 귓가에 희미하게 들리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나는 미소 지었다. 옆에서 내 이름을 필사적으로 부르며 내게 다가...
“필요 없다면 가차 없이 버려도 좋아, 난 하기와라 씨의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테니까.” 뜨거운 공기가 무겁게 짓누르는 어느 날, 나는 그 말을 입에 올렸다. 갓 산 아이스크림이 행여나 녹아서 자신의 손에 달라붙을까 안절부절하던 하기와라 씨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워서 무심코 미소가 흘러나올 뻔했지만, 만약...
과거에 쫒던 이상이 누군가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감언이설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이미 많은 죄를 쌓은 후에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것을 눈앞에 두고서 치하야는 눈꺼풀을 닫으며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슬픔을 지우겠다. 내 이상에 힘을 보태주지 않겠나?’ 지금...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되어 천장에 닿는다. 말 자체는 누군가를 향한 것이지만 그 말이 향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며 소녀 또한 “글쎄 누구에게 향한 것일까요“라며 일부러 확답을 흘리며 피하겠지. “만약 치하야쨩이나 시죠 씨, 그리고 하루카쨩에게...
햇빛이 방 안에 물처럼 차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득한, 작으면서도 포근한 사무실 안에서 갈색 단발이 인상적인 소녀가 서류로 보이는 종이 다발을 들고서 신음을 흘리며 정리를 하고 있다. 단정하게 차려 입은 정장은 그녀의 성격을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그런 소녀를 지켜보면서 느긋한 미소를 짓는 한 명의 여성이 은빛 머리...
"나는 약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분명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유리는 담담하게 마음의 나무의 기둥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여기에 오면 언제나 어리광쟁이가 되어버리는 자각을 느끼며 쓴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유리의 어두운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며 어머...
하기와라 유키호가 사라졌다. 주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모모코는 지친듯한 머리를 크게 흔들며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아무리 모모코의 몸집이 작다고 해도 작업용 간이 의자는 모모코보다 조금 더 작아서, 그 직후 모모코는 얼굴을 찌푸리며 상체에 힘을 넣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유키호 씨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힘겹게 중얼거리는 그 말은 모모코 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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