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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주에게 아주아주.. 아주 중요한 날이다. 바로 2학년 1학기 기숙사 합격 발표가 나는 날인데, 학점으로 기숙사 당락을 결정하는 이 미친 학교 시스템에 1학년 시원하게 놀아재낀 여주는 덜덜 떨며 새로고침을 할 뿐이었다. “야, 나 진짜 기숙사 떨어지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해.“ "잘 곳이 어디 기숙사 뿐이냐. 널리고 널린 게 월셋방인데." "돈은 뭐 ...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기현도 마냥 세상 잃은 듯 살 수 없었다. 기현의 위치가 그럴 수 없을 뿐더러 CH가 매섭게 쫓아 오고 있는 게 새삼 실감이 났기 때문이었다. 여주가 없던 일상을 돌아온 듯 했다. 애초에 없었던 아이였던 것처럼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고 티내지 않았다. 티를 냈다간, 그러다 기현에게 들켰다간, 본인은 더이상 산 목숨이 아닐테니. “실장...
“오셨습니까.” “현장 잘 다녀왔고?“ ”네. 아 근데..“ ”여주랑 있었어.“ ”예?“ ”왜 안 나온 건지 물어보려던 거 아니었어?“ “김여주랑은.. 왜 있었던 겁니까?” “말이 많다, 희정아.” “죄송합니다.” 분명 어제 엉망으로 해놓고 갔던 사무실이 깔끔했다. 책상 위의 것들이 다 떨어져 있었을텐데 사무실은 너무나도 깔끔했다. “청소 네가 했냐?” “...
”선생님! 8반 쌤이랑 결혼하신다면서요!!“ ”야 너네 소식 되게 빠르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고2의 교실의 풍경은 대체로 이렇다. 꼴에 예비 고3이라고 문제집은 펴놓고선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를 본다거나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첫사랑 얘기를 끌어내는, 뭐 그런. “어떻게 만나셨어요? 학교에서? 기현 쌤 오신 지 한 학기 밖에 안 됐잖아요!” “...
“너 CH에서 나와, 그게 내 소원이야.“ 이 말을 들은 여주는 잠시, 아니 조금 오래 기현을 쳐다봤다. “… 알고 있었어요?” “응.“ ”언제부터?“ ”너 쇄골 밑에 문신 있잖아. 저번에 옷 사러 갔을 때 봤어.” “… 왜 옆에 두고 있었던 거에요, 근데.” “너 좋아하니까.” 그러고 또 여주는 오래 기현을 쳐다봤다. ”소원이잖아, 들어줘.“ ”아저씨도 ...
진우는 그 말만 반복했다. 죽었다. 우리 엄마가 죽었다. CH가 죽였고, 그래서 우리 엄마가 죽었다. 그 말만 반복하던 진우는 힘이 빠진 듯 소리가 멀어졌다. 귀에 바짝 대고 있던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에도 힘이 빠졌겠지. 기현은 한숨을 쉬더니 차분히 말했다. "진우야." "......." "내가 갈게, 어디야. 너." 진우가 병원 이름을 말해주자 기현은 ...
“아저씨, 나 다음 주 수능이에요.” ”응.“ ”그리고 두 달 뒤에 성인이에요.“ ”응.“ ”나 성인되면 아저씨랑 술 마실거에요.“ ”안돼.“ 옆에 앉지 말라는 기현의 말 때문이었는지 여주는 뒷자석에 앉아 기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기현은 당연히 싫지 않았지만 일부러 성의없이 대답했다. 여주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정말 무관심했던 사람의 태도들과는 ...
차에서 내려서 집까지 올라가는 동안 여주는 기현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괘씸했다.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저런 계약을 하자고 할 수가 있는지 여주는 기현이 미웠다. 그래서 더 그랬다. 아무 말도 안 걸고 가방을 들어주려하는 손길도 거절하고. “들어가세요.” “응.” “아 방금은 생활에 불필요한 대화였던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기현은...
그렇게 안겨있는 여주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이 아이가 안전하다면, 그리고 함께 계속 있을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니까. 일정하게 들썩이는 여주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마치 안심시켜주는 것처럼. ”미안해.“ 기현의 사과는 무슨 의미였을까.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
“희정 아저씨, 오늘은 안 데리러 오셔도 돼요.“ ”너 안 데려다주면 내가 혼나.” “괜찮아요, 같은 방향 친구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알겠어, 그럼.“ ”넵 들어가세요~” 같은 방향 친구 같은 건 없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여주는 거짓말까지 하고 그 길고 긴 하굣길을 혼자 걸었다. “야 순희야.“ ”네, 실장님.“ ”여주 학교 끝날 ...
“그냥, 내가 하는 일이 그렇잖아. 사람 못 믿고 경계하고. 그러니까 그랬어.” “근데 왜 지금은 이렇게 잘해줘요?” “살리고 있는 중이니까.” “내가 만약에 막 아저씨 위험하게 하려고 온 사람이라면요?” “스파이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허술한 척 하는 거라면?” 여주는 눈은 반정도 감긴채로 웅얼댔다. 기현은 그런 여주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
“내려.” 여주는 기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날 하루가 여주 딴에는 힘들었는지 차 안에서 잠들어버렸고, 어딘가에 도착한 상태였다. 기현은 여주가 타고 있던 조수석의 문을 열고 고개를 까딱, 했다. “… 여기 어디에요?” “배고픈 거 같길래.” 기현은 빨리 안 나오냐는 듯 한 번 더 고개를 까딱 저었다. 여주는 잠시라도 감고 있었던 눈을 비비고선 굼뜨...
“선배, 어디예요?” “기숙사지. 왜?” “그냥, 뭐하는 지 해서요.” “너도 기숙사야?” “아니요, 이제 야간 훈련 끝나고 들어가는 중! 왜요?” “거기 있어. 잠깐 보자, 보고 싶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 공동주택 복도라 그런 거겠지. “선배 내일 새벽 훈련 있지 않아요?” “응.” “그럼 좀 쉬지, 왜 나와.” “보...
기현은 아무 말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잡아 제 사무실로 올라갔다. 여주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자, 얼른 타라며 다정한 듯 다정하지 않은 고갯짓을 했다. 여주는 직감적으로 기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사람이 왜 화가 났고,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는 지 말이다. 하지만 여주는 수학 공식보다 사회 생활을 ...
그렇게 차이고, 맞고, 던져지며 여주는 기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장 기현은 차에서 내려 여주가 들어간 건물을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그렇게 보면 그 안이 보일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현도 일개 인간인지라, 등교하는 학생들에 가려 더욱 더 그 곳을 바라볼 수 없었다. 기현이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기현은지금까지 제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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