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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나는 숙소에 도착해 짐을 아무렇게나 끌러놓았다. 어수선한 방 침대에 홀로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휴가 첫날인데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린다. 임무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겨냥하고 쏘는 박진감을 느끼고 싶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싶다. 손을 가만히 가슴 위에 올려놓아 보았지만, 희미하게 일상을 뛰고 있는 소리만 느껴질 뿐, 고양된 기쁨은 느껴...
미나미 나나. 나이는 21살, 늘 최전방에 서는 DA 최정예 리코리스. 일반인이었다면 연예인을 해도 어울렸을 정도로 춤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고 흥도 많아서, 언니처럼 따르는 리코리스가 많았다. 그런 그녀가, 고작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비록 목표는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타키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또다른 최정예 리코리스, 이노우에...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퍼졌다. 사회자는 하얀 정장을 입고 자신의 모습을 뽐내듯이 어깨를 으쓱하다가 무대 중앙을 향해 손을 펼쳐 보였다. "지금부터 다시는 없을 공연이 펼쳐지겠습니다!" 객석이 소등되고, 무대 위만이 밝게 빛났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쟁쟁히 울려퍼졌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까만 정장을 ...
"싫어요." 그날의 절규를 기억한다. 치사토는 마구 몸부림치는 타키나를 꼭 끌어안았다. 타키나는 치사토를 뿌리치지 못했고, 그대로 치사토의 품 안에서 주저앉았다. "치사토가 죽는 건 싫어요…!" 그 말에 치사토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눈 앞에서 치사토의 생명줄이 도망가는 것이 절망스러웠고, 그 절망을 치사토가 굳건히 끌어안았던...
쿵, 코바야시는 자다가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집 밖에서 괴성이 들리고 있었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세상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작은 생물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코바야시의 집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드래곤으로 변한 토르가, 오른쪽 허리에 칼을 꽂고 쓰러져있었다. "토르!!!!!!!" 코바야시는 그렇게, 자다가도...
아직 세상이 눈을 뜨기도 전. 학원도시 레벨 5 중에서 제3위, 미사카 미코토의 옆자리가 가지런하게 비어 있다. 방 안에는 이사할 짐이 가득 담긴 상자들이 복작복작 모여 고요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복잡한 상자들 틈에서, 쿠로코는 혹여나 큰 소리가 나면 미코토가 깰까 조심스럽게 나갈 채비를 했다. 저지먼트 완장까지 제대로 달아 거울 앞에서 비춰 보았다. ...
“시라이 씨의 퇴원을 축하하며~” 건배, 하는 소리에 맞춰 세 사람은 신나게 잔을 들어올렸으나 쿠로코는 한숨을 쉬며 잔을 들어올리려다 말았다. 데자뷰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모르는 사이에 참 자주 입원했구나 싶기도 하다. 이런 광경,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그리운 냄새가 난다. “저번에는 퇴원하고 일주일 뒤에 축하해주더니, 이번에는 퇴원하기도 전에...
침착하자.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수술이 잘못되어 혈액순환이 이상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전투에 후유증이 남아 잠시 어지러웠던 걸지도. 어쨌든 정신이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 한 번에 두 사람을 사랑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것도 똑같이 생긴 사람을? 게다가 자매를? “…뭐야?” 그럴 리가 없다. 오로지 언니 뿐인데. 나한테는 오직 미코토 언...
미코토가 먼저 뛰어 나갔지만 붙잡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무스지메는 25층 아래로 추락했다. 쿠로코는 생각할 겨를 없이 미코토의 팔을 잡아 공중으로 텔레포트했다. 떨어지고 있는 무스지메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상처의 통증 때문에 쉽지가 않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간신히 시야가 맑아졌을 때, 멀리서 차를 타고 도망가는 무리가 보였다. 서둘러야 한다...
무스지메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쿠로코도 휘청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오른쪽 다리를 관통당했다. 집중력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건가. 단단히 박힌 철심을 텔레포트시켜 빼내고는 너덜너덜해진 셔츠의 소매를 찢어 다리에 꽉 묶었다. 무스지메는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않고 있었다. 그저 가쁜 숨만 몰아 쉬었다. 아무래도 오...
쇼쿠호는 정처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끌고 다녔다. 자꾸 특정 건물들을 기웃거리면서 동태를 살피더니 '여긴 아니네~'하면서 돌아서기를 벌써 다섯번째. 처음에는 다른 중요한 단서라도 잡고 있는 줄 알고 묵묵히 따라 나서던 액셀러레이터도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이 녀석도 대책 없는 녀석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않고 입구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서니 대체 무슨 ...
먼지는 차츰 가라앉았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쿠로코는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고 무스지메 역시 처음보다는 조금 지친 얼굴로 쿠로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스지메에게 몇 번 상처를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강한 타격을 주기에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동시킬 물건이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무스지메가 지속적으로 공격을...
“이 일이 끝나면…제 머릿속에 있는 시스터즈 사건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주실 수 있나요?” 진심인가. 쇼쿠호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빨려 들어갈 듯 쿠로코의 눈망울을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은 기억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괴로운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망설이는 것이 어느 순간을 완전히 지우는 일이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
연구원이 차를 대접하며 깍듯하게 물러났다. 무스지메는 소파에 등을 푹 기대며 찻잔을 들었다. 연구소에 이렇게 직접 초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늘 연구원 쪽에서 먼저 찾아오곤 했었는데. 게다가 시종일관 깍듯했다. 물론 실험의 시작이자 모든 주축을 이쪽이 쥐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어쩐지 조금 석연찮다. 너무 허리를 숙여대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대접...
쿠로코는 아침상을 앞에 두고 두어번 입맛을 다셨다.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병원에서 주는 식사가 물리기 시작했다.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면 물리는 식사도 마다하지 말아야겠지. 쿠로코가 숟가락을 드는 동안 미코토도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쳤다. 쿠로코는 그런 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던 미코토가 문득 시선을 느끼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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